기차를 타고 바다에 가고 싶다. 기왕이면 조금 낮게 가라앉은 하늘이면 떠나기에 더 좋다. 시계가 맑아서 손채양하고 가늘어진 눈으로 먼 곳까지 바라보는 것보다 바로 보이는 눈앞의 것에 편안하게 시선 보내도 좋을 그런 날씨면 더 제격이다. 그토록 붙잡아 두고 싶던 것들을 이쯤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속에 놓아 준다. 파도가 밀려왔다 흔적마져 지우고 다시 밀려간다. 고운 모래밭에 새롭게
발자욱을 남긴다. 그렇게 나를 기다리는 내일 앞에서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기. 축축하게 물기젖어 드러나던 푸른 기억들에서 조심스럽게 비껴 선다. 그저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바라 본다. 아팠던 날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작은 일에 분노하고 무책임하게 자신을 유기 시키지는 말자고 약속 한다. 그리고는 창 하나 내어 바닷바람을 불러 올 것이다. 쟈스민이나 장미향 같은 화려함이 아니어도 괜찮다. 연한 물빛 바다 내음이면 족하다. 습관처럼 스미는 우울에 침몰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젠 그런 것들이 나를 더이상 흔들지 못한다. 함부로 눈물을 핑그르르 떨구지는 않는다. 그저 한 시절이 가고 또다른 시절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니. 헛되이 감정을 소모하는 일에 냉담해진다. 조금은 쓸쓸해도 견딜만한 아름다움과 팽팽한 에고(ego)가 아직 내겐 있다. "바다를 보면 여전히 설레고 들꽃이 피면 눈을 떼지 못하던 당신. 아직도 설레는 가슴을 꼭꼭 숨겨둔 채 살았던, 어머니는 여자였다. 사랑이 많은 여자. 돌보지 않아도 될 구석구석까지 닦아내고 어루만지는 사람. 가끔 혼자 외로웠던 사람. 자유롭고 싶었지만 자유라는 말조차 낯설어하는 사람. 어쩌면 고맙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을 한번쯤 듣고 싶었던 사람. 어여쁜 당신, 어머니는...여자였다." 어린아이, 소녀, 여자, 어머니... 간간히 이유없는 슬픔이 가슴으로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그리움에 베겟닛을 적신다. 풍경처럼 지나간 물기 입은 세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겠지. 동행이 되어 주었던 사람에 대한, 애틋함에 대한, 사랑에 대한, 예의 겠지. 세월속에 흘러가버린 기억들이 눈물겹다. 솜털 보송하던 연분홍빛의 꿈많은 소녀의 영혼이 거기에 있고 긴머리 찰랑대는 젊음과 열정으로 빗어진 매력적인 푸른 청춘이 있고 사랑과 믿음으로 맺어진 가족의 역사속 행복의 중심에 선 여인이 있고 억눌린 자유를 찾아 방황하며 고통과 외로움에 끈임없이 아팠던 영혼의 어우러진 세월이 눈물 되어 젖는다. 무거웠던 기억도 소중한 내 것이다. 모든것은 때가 되면 떠난다. 새가 둥지를 떠나듯이 다 자란 아이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 딛는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자리가 휑뎅그레하다. 따스하고 양지바르던 둥지를 떠나 거친 바위 사이를 아슬하게 걷는다. 뒤뚱뒤뚱 세월에 한 발 들여 놓는다. 어린 새는 어미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아직 모른다. 아이는 얼마나 험한길을 가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오늘에 서 있는 우리도 아직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 날개짖이 아름답다. 가끔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세상을 거꾸로도 볼 것이다. 어떻게든 그 나름대로 제 길을 찾을 것이다. 넓고 푸른 하늘을 나를 것이다. 모든것은 그렇게 서투르게 흘러가다가 시들거나 눈부시게 살아 남을 것이다.
천천히 나의 것들이 멀어진다. 그러나, 인내와 사랑으로 엮어진, 세월이 안긴 선물은 진품이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슬프진 않다. 미움이나 분노는 늙게 하거나 병들게 한다. 세월을 어루 만지는 여유가 있다. 지금은. 그리고, 치명적인 외로움은 이제 세월속에 가둔다. 내 작고 애틋했던 것들에게 애정을 듬뿍 준다. 그들이 있었기에 설렘의 날들이었다. 지금은 화해의 시간이다. 지난 어둠속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감싸안고 있었다는 것을 아침이면 비로소 알게 된다. 아침의 태양은 어둠을 밝히고, 꽃을 피우는 숲의 향기로 내게 머물러 준다는 것을. 나의것이 하나가 되어 살아 숨쉴 생명의 날들에 깊은 사랑을 보낸다. 그리고...따뜻한 맥박의 고동으로 뜨거운 가슴이 된다 志我 Somewhere In My Soul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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