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스크랩] 사이...아득하면 되리라

타리. 2009. 8. 20. 08:48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아득하면 되리라 / 박재삼
      늘 누워서 책을 읽다가 불도 끄지않고 잠이 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책을 편다. 읽는것을 즐기지만 지금은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눈물이 나고 침침해지는 노화현상이 슬픔으로 잠식한다. 조용히 내려진 우유빛 커튼, 정갈하게 정리된 내 조그만 방안의 책장, 빛바랜 사진틀, 소소한 잡동사니들. 빛 밝은 곳에서 느끼는 투명함보다 때론 아늑함과 고요함이 나즈막하게 깔린 비좁은 방에서의 휴식이 감미롭게 스민다.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우울함위에 우울함이 덧쌓이는 시간을 가끔씩은 즐긴다. 나이 들면서 그런 감정을 드러내놓지 않는게 나이다운 행동이겠지만 그런 감정들이 강한 생명력으로 지탱하기도 하니 벗어나기 힘든 불치병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해져서 풍요로운 생활을 이룬다해도 사람들은 그 이면에 정신적인 공황을 나름대로 겪는다. 극단적인 슬픔이나 기쁨이 없는 밋밋함은 무미건조한 일상이므로. 거친 소용돌이속에서 휘둘리는 고통이 생명의 불을 지펴 삶을 채워주기도 한다. 조급한 마음과 지친 마음을 위해 깊은 숨을 내쉬고 화해의 시간속으로 들 때, 그 안온함은 한 뼘 성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너무 많은것을 잃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덤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할까. 부와 문명의 이기에 편승해서 편한 삶을 사는게 행복이라고 믿어버리는 우를 범하기 쉽다. 조금 부족함으로 불편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 나오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복해지길 바란다. 조금 느리게 보내도 좋은 마음속 나들이에 영혼의 울림으로 진정 행복해지길 소원한다. 정말 그러기를. 순수가 지닌 가난함으로 넉넉하게 사는 영혼의 여유로움에 한 발 내딛게 되기를 늘 바라는게 사치일까. 자주 가슴에 가득 품기만 하고 말이 되지 못한 수많은 사연이 과부하에 걸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일 때도 있다. 먼지 한 점의 무게도 감당하기 힘들고 벅차기만하여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무뎌지고 단순해지기 위해서 열정이란 한낫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기도 한다. 몸 안의 미세한 조직이 파르르 떨려오고 무감각으로 방치되었던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면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온몸의 날카로운 신경들이 열린 세포들 사이로 일어서서 나풀거리며 헝클어진다. 사랑에도 의무가 있었나. 눈을 감고 이마를 지긋이 눌러 감정을 가라앉힌다. 자기중심적인 고립무원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가슴을 쓸어 담는다. 미안하면 금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슬프면 금방 눈물이 고이고 행복하면 하얀이를 드러내는 헤픈여자의 삶이란. "산다는것은 이렇게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몰랐다" 사랑이든 삶이든 자기를 흔드는 것은 바람도 달도 아닌 자신의 속울음이라는 깨달음으로 자아을 통찰하게 된다. 맘에 드는 시에 감정을 이입해보는 것도 정서적인 위로가 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누구에겐가 조잘거리며 수다를 떨고 싶은데 돌아보면 마땅한 아무도 없어서 허둥댄다. 나누고싶은 우울속에 사랑도 있는데 혼자라는 터무니없는 상실만이 깊숙히 파고들 때가 있다. 희망의 불빛을 찾는 길이 힘겨워도 그게 생활의 연료가 되기도하니...참. 질긴 기침이다. 거의 한달을 채워가나보다. 쿨럭거리면서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갔다. 거친 바람에 부딪치지만 우뚝 선듯 확연히 다른 모습이 참 대견하다. 찬바람만 불어도 옷깃을 단단히 여미던 엄살은 시간속에 흘러갔다. 느리던 하루가 이젠 제법 빠르게 간다. 스물 네시간이 열두시간 쯤으로 줄어든 것 같은. 차츰 보편적인 궤도에 들어섦인가.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속에서는 자랄 수 없느니. 갈릴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너무 가까이 나무를 심어 놓으면 한쪽이 다른 한쪽에 그늘을 드리워서 풍성하게 자라지 못하는 이유란다. 두 나무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찰랑거리는 하늘바람과 춤추는 햇볕이 그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것은 나무들 뿐만이 아니다. 사이사이의 거리도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데 한 몫을 한다는걸 숲 속에 들면 안다. 바람이 부려놓고 간 거리만큼의 나무와 나무사이... 그리고, 너와 나의 사이. 오늘도 책을 읽다가 불을 켠 채, 잠들기를 바라면서. 志我 Valentine / Martine Mcb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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