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2008 대구은행여성백일장 차상 성효경
나의 어릴 적 거닐던 숲은 우리들의 비밀화원이었다. 세상만물의 시작을 알리며 우리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3월의 봄이 시작되면 곳곳에 진달래 꽃을 피워 유혹하듯 끌어들여 우리들의 재잘거리는 웃음꽃과 이야기 꽃의 비밀을 함께 나누어다. 진달래를 따다 화병에도 꽂아 두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술도 담아보고 또 할머니가 즐겨먹는 화전도 먹을 상상을 하며 욕심을 내어 다투기도 하고 온종일 숲 속에서 꽃을 꺾었던 시절.
놀다 지쳐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욕심 내어 바구니 가득 채운 꽃을 숲길에 앉아 마냥 진달래꽃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던 내 어린 시절의 숲.
지금도 그 시절의 숲은 나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어릴 적 나의 숲은 우리들의 실험실이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이 시작되면 숲은 온갖 소리로 우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매미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새소리로 인해 나무에 오르게 했고 매미와 장수벌레, 사슴벌레 등 온갖 곤충을 잡아 다리도 세어보고, 떼어보고 우리들만의 실험을 즐겼던 뙤약볕의 시원한 숲 속의 실험실이 이젠 그리움의 산실로 남겨져 있다.
나의 어릴 적 숲 속은 우리들의 피난처였다. 단풍이 눈부시게 물들여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마음껏 과시하듯 뽐내는 가을의 숲 속은 마음의 피난처로 통했다. 가을이 되어 먹을 것이 많았던 그 시적에 우리는 손 가득 과일을 들고 엄마에게 또 친구와 동생, 언니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숲에서 달랬다. 그렇게 우리들의 위로를 받고 주는 숲 이었다.
어릴 적 나의 숲은 우리들의 기다림이었다. 하얗게 눈 내려 세상의 모든 것을 감쪽같이 숨겨버린 그 숲 속에서 우리들은 발자국을 찾았다. 가을부터 준비한 덫 속에 과연 어떤 동물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밤잠을 설치게 하는 설레임의 숲이었다. 눈길을 헤메며 찾은 산토끼로 소문난 외할머니의 손놀림 속에 잊을 없는 맛난 요리가 또다시 기다리고 있었던 시절.
이렇듯이 어릴 적 숲은 나에게 있어 모든 것 이었다. 숲이 나에게, 또 우리들에게 마음껏 베풀어준 꿈과 희망과 사랑과 설렘이 지금은 너무나 소중하고 고맙게 여겨진다.
지금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며 나의 어릴 적 우리들만의 숲을 이야기한다. 나의 아이들이 지금은 맛 볼 수 없는 숲이 없어짐의 서글픔을 과연 느낄 수 있을지…….
왠지 그때 그 시절 숲으로 달려가 나의 아이들과 마음껏 누리고 싶다. 나의 어릴 적 그 숲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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