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었던 서영은 작가의 글입니다.....
조그만 뜰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은 집이다. 뜰은 크지 않지만 나무가 제법 많이 있다. 향나무, 도장나무, 영산홍 같은 정원수 외에도, 본래부터 자생해 온 산목련과 아름드리 소나무와 유실수인 대추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있고, 큰 바위가 오른쪽으로 뜰을 품듯이 껴안고 있다.
덩치가 염소만한 개 세 마리는 뜰에, 몸집이 작은 요크셔종 한 마리는 집 안에 살고 있다. 이들이 나의 가족이다. 거두고 보살피고 사랑을 나누니 사람 가족이나 진배없다.
식물군에 속하는 가족의 특징은 너무나 내성적이고 조용한데다, 한 자리에만 가만히 있어, 그 존재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하지만 이들의 조용함은 집 안의 가구나 벽에 걸린 그림들의 정물성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있음이 바로 적극적인 삶의 형태일 뿐, 나무들은 그 부동의 자세 안쪽으로 쉼없이 움직여서 가지와 잎을 살찌우며, 꽃이나 열매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잊은 듯이 지내다 어김없이 그 자리에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나무들을 보면 숙연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일단 뿌리를 내린 그 한자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순연함, 살아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자기 방어조차 할 줄 모르고, 이득을 취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을 스스로 봉쇄하고 흙 속에 파묻어 버린 다리. 이 세상에 가장 넘치도록 많아서 다른 생명체와 먹이를 다툴 필요가 없는, 흔하디 흔한 빛과 물만 먹고 사는 겸허한 생리. 생명을 위협하는 풍상과 화마조차도 피하지 않고, 가뭄으로 땅이 메말라 물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차라리 고사하고 마는 고고한 성품. 그래서 모든 나무는 의연함과 신령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 반면에 동물 가족인 봉순, 점순, 봉이, 귀동이는 먹이를 탐하고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뛰어다니거나 짖거나 매달리거나 배설하거나 하는 것이 그들의 타고난 생리다. 생리로 보면 나무의 고고함과 동물의 부산스러움은 대척점에 있다.
나의 하루는 눈 뜨자마자, 이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로 분주해진다. 집 안에 사는 녀석은 10년 전 한 친구의 부탁으로 한 식구가 됐는데, 온 집을 자기 화장실로 여긴다. 하기야 당연한 일 아닌가. 세워 놓은 병풍을 전봇대로 여기는 녀석의 단순함이 때로는 통쾌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어쨌든 방심했다 하면 어느새 녀석의 배설물을 밟기 때문에 간밤에 저질러 놓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치워야 한다.
현관에서 지내는 봉이는 내가 일어난 기미를 느끼자마자 댓바람에 현관문을 긁어댄다. 녀석을 밖으로 내보내는 김에 뒤따라 뜰로 나간다. 독점욕이 강한 봉이는 봉순이와 점순이가 내 근처로 오지 못하도록 견제하느라고 야단법석이다.
뜰에는 바깥 녀석들이 간밤에 저질러 놓은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빗자루로 쓸어서 한군데 모아 놓고, 맨손체조를 하고 있노라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법석인 녀석들이 딸랑딸랑 종을 치듯 내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음을 알려준다.
대문 틈에 끼워져 있는 아침 신문보다 그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더 ‘아침스럽다’. 여기에는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굶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과 죽음이 온전히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책임감, 그래서 도무지 번거롭게 여길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런 경건한 책임감이 내포돼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 속에는 그것을 회피할 경우, 다른 생명의 죽음을 야기하는 마지막 연결고리에 놓여 있는 입장이 있다. 그런 입장이 되는 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다.
목련꽃이 만개한 요즘엔, 매일 하루 한 번씩, 커피 한 잔을 들고 뜰로 나간다. 이때는 집 안에서 사는 귀동이도 데리고 나와 덩치 큰 아우들을 만나게 해준다. 목련 나무 아래 놓인 그네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책을 펼쳐들면 책상 위의 하다 만 일거리도, 세금을 내야 하는 일도, 문병을 가야 하는 일도 더 이상 나를 재촉하지 못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왜 이렇게 조용한가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 야단법석하던 녀석들이 여기저기 배를 땅에 붙이고 편하게 엎드린 채 눈만 끔벅이고 있다. 그 자세는 안타이오스 신이 그렇듯, 대지의 고요와 한 몸이 되려는 것처럼 보인다. 움직일 때마다 중심이 흐트러지는 동물들이 넘어서야 할 숙명적 과제, 죽음에 이를 만큼 깊은 고요를 정복해야만 얻어지는 힘.
비로소 나는 부산스러웠던 일상의 한 공간이, 시원(始原)의 대지로서 모습이 바뀐, 그 깊은 풍경 속에 마냥 여유로운 호흡으로 섞여 있음을 느낀다. 일일이 눈길을 주지 않아도 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통째로 마음에 와닿는다. 영원을 빚는 시간, 그리고 공간.
있는 듯 없는 듯한 바람의 애무에도 아찔한 현기증을 느껴 제풀에 후두둑 떨어지는 목련꽃잎, 건너편 집 담벼락에 맑은 물로 새긴 듯한 소나무 그림자, 어디서든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찾아 제 집으로 옮겨가는 개미들의 부지런한 행렬, 햇빛의 찬연한 입맞춤에 날개처럼 팔랑이는 대추나무 잎사귀.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그 팔랑거리는 잎새 아래에서는 꽃에서 탈바꿈한 작은 열매가 곤한 잠에 들어 있을지도….
내 의식은 열두 대문 안쪽 깊숙한 곳의 어느 궁궐에 이른 나비처럼 슬며시 낮꿈 속에 든다.
우리 집을 찾는 친구들은 짖어대고 엉겨붙는 이 동물 가족들을 두고 “그야말로 개판이네” 하고 혀를 찬다.
그들에게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지복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출처] <살며생각하며> 봄날의 깊은 안쪽 - 서영은(소설가)|작성자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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