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향기

마지막 봄을 팔다

타리. 2007. 5. 26. 22:32
 

마지막 봄을 팔다



대자연시장 앞길에는 늦은 봄을 솎아온 할머니 한 분이 굽은 허리로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만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허연 스치로폴 박스위에 봉긋 봉긋하게 얌전히 눈을 내리 깔고 할머니 얼굴과 지나치는 행인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두릅, 쑥, 취나물, 상추, 산초 잎들


70성상 넘도록 이른 아침부터 산허리 비탈밭에서 싱싱한 푸성귀를 뜯어다가 거리를 향긋한 봄냄새로 넘치게 하는 할머니지만 그녀 가슴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가 보다


한평생 화장 한번 한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할머니의 얼굴엔 이리 저리 패인 물고랑 같은 굵은 주름만 흑백의 음영을 만들며 오늘을 더욱 아프게 한다


팔려나온 봄들이 맑고 푸른 눈망울 굴리며 나 사 가라고 소리소리 외쳐 보지만 옆에 기대어 선 은행나무 새잎들만 물끄러미 내려다 볼 뿐 좀처럼 봄이 팔리지 않는다


개 한 마리 지나가고, 꼬박꼬박 졸던 얼굴에 비끼는 햇살이 길게 기지개 켤 무렵 유모차 끌고 지나가던 새댁의 천 원짜리 두 장에 검정 비닐봉지 속엔  늦은 봄이 수북이 담기고 있다


*문학바탕 2007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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