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이 내 주위에 있지만
나는 그것들이 그곳에 왜 있는지 생각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오만하고 존재의 권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꿈이나, 미래 어느 날의 축복같은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들에게
나는 얼마나 나약하게 호감을 표시하였던가.
하지만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사물들이 아무도 모르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내가 나에게 동의할 수 있을때
내 삶이 좀더 여유있어 지리라는것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펼쳐든 사랑이야기 속에서
젊음이 철철 넘쳐 주체하기 힘든 눈부신 이야기에 묻혀
가쁜숨을 몰아쉬며 화려하게 빛나는 언어의 유희에 놀아나는데,
불쑥 눈에 들어오며 머리속을 마알갛게 씻어내는 귀절이 있어
다시 되짚으며 몇번을 읽어 본다.
별일 아닌것에 황량한 가슴되어
해질녘 붉은 노을처럼 처절하던 외로움이라던가
형체도 없이 다가오는 그리움이라던가.. 하는
스멀스멀 찾아들며 짖누르는 허잡스런 나부랭이들을
그저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될때
예기치않은 것으로 부터 얻어내는 투명한 환희 같은
메가톤급 감동은 순간의 기쁨이되고 행복이 되어준다.
참으로 평범한 일상일진데
어느땐 승부도 없는 게임에 치열하게 부딪친다.
새끼손꾸락 만큼의 양보도없이
여린가슴과 여문머리가 싸움을 그치지 못하여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지기도 한다.
정신이 말짱할땐 잃어버리기 쉬운것에 밑줄을 긋고
또박또박 올곧은 길을 걷기도 하고
가슴은 아픈데, 입은 웃고있는 절묘함도 보이지만
앞이 흐려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면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지리멸렬하고 유치하게 뒤바뀌는게 다반사다.
그런 와중에 가슴에 별빛처럼 곱게 저며들어
명징하게 밝혀주는 몇마디....
분명히 하늘이 높은 계절에 읽는 독서의 효력인가 싶기도 하다.
책읽기 좋은날/이수동화백
Acrylic on Canvas,27.3X22.0cm , 2001(3호)
하릴없는 저울질이나 일삼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사물에 대한 고마움을,
그것들의 소중함을 외면하여 부질없는 욕심만을 채우려는 미련함은
어찌 그것들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도 못했더란 말인가.
잡히지도 않는 허상을 향한 몸부림으로
오만하고 아주 도도하게...가당찮은 일이지.
크게 숨을 내쉬고, 가슴을 활짝 펴본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발밑에 서걱거리는 낙옆도 밟아본다.
서늘한 바람결에 가슴도 맡겨보고,
흘러가는 구름에 흩어지는 마음도 맡겨본다.
순수한 자연을 벗삼아
주위의 사물들에게도 그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보기로 한다.
이미 오랫동안 지켜온 내자리가 휑뎅그레해짐은
사랑과 정성이 부족함이 아니던가.
처방전을 알고 치료법을 터득했다면
그리 어려울게 어디 있을라구... 책읽기에 좋은 계절.
다독거리는 특효약이 내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잃어버리기전에 확실하게 밑줄 긋는것도 잊지 말고
챙겨보려 한다... 늦진 않았겠지.
모두 스러져버린 황량한 벌판으로 내몰림 당하기전에
차곡차곡 채워볼 일이다...가슴가득히
하여,
시린 겨울을 이겨낼 것이다.
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