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스크랩] 처음이자 마지막이듯

타리. 2009. 8. 20. 08:40
      어느날 불현듯 나도 뭔가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손으로 쓰기 시작한, 토라지고 분노하며 절망하던 내 철딱서니 없던 수다는 보이지 않는 상대를 대상으로 그칠줄 몰랐다. 그렇게 토해내며 쓰고싶어 안달하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완전히 객관화 시키지 못하고 까발려지는 아픔을 겪을 때도 있었지만 그 흉터들...뒤돌아보면 그저 허접하고 가라앉은 묵은 쳇기같은 것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그러나 그 열망속에서 내 기쁨과 고통은 은밀하게 세상과 소통하고 이해가 깊어지고 있었으니 나를 찾아가는 여행치고는 꽤 값진 것이 아니었을까. 흐리거나 맑은 살이에서 여유와 베품을 선물해 주었다. 쉬어 가야지. 아이나 어른이나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어디론가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키고 바람부는 날 따뜻한 찻집에 들려 유자차를 한 잔 마시면서 '내일' 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는 넉넉함에 격려를 보내면서. 겨우네 얼었던 땅속에서 숨 죽이며 기다리던 강한 생명의 세상을 향한 몸짖에서 희망을 배우고, 모진 겨울을 죽은듯이 참아내던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을 피워 세상을 환히 밝히는 섭리에서 인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감동인가. 하늘과 땅과 자연의 어우러짐에 감격하고 척박한 환경, 돌틈이나 손길 가지않는 마른 수풀사이에서 햇살과 바람의 속삭임으로 피우는 들꽃의 순수와 아름다움이 눈물겹게 아름다운 이유는 꾸밈이나 치장이 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들의 수수한 삶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로 부터 얻는 희열은 마음속의 결핍을 치유하고. 다시 내일로 향하여 한 발 내딛는 계기가 되었음은 일상에 갇혀서 또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면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감동하지 못했던 내 안의 그림자를 거두는 일에 한 몫 한 셈이었으니. '산이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몸속에서 울리는 심장의 고동을 따라 산을 오른다. 현재를 껴안기 위한 몸부림으로. 무언가 속삭여줄것 같은 유혹으로 자꾸만 숲 속에 든다. 깊숙히 들어 심호흡을 하고 위를 올려다 보지만 거긴, 거대한 침묵만이 전신을 감싼다. 도시의 온갖 소음의 공해를 뒤집어 쓴 탓에 혼신의 힘을 다해 귀 기울이고 그 침묵에 대항한다. '제발, 내가 당신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어서 깨우치기를..' '당신의 침묵이 날카롭게 패인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이론과 실천이 모호하게 엇갈린다. 머리와 행동이 일치되지 않아 온전함을 이뤄내지 못한다. 온전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일치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아무 여과없이 무수하게 쏟아낸다. 현실의 벽이 높아 뛰어넘지 못한다고 핑계라도 대고 욕망속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라도 볼까. 항상 이런 넋두리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면서도 정작 속 시원히 해결되는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문제다. 하나같이 자신만의 외로운 섬에서 저 혼자 살아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이지만 결코 변하지않는 순수로 따뜻하게 살아야 함을 염려와 믿음으로 잊지 말아야 되는데... 힘이 들땐 무작정 헤메지 말고 고단한 날개 잠시 쉬어가도 괜찮은데 말야. 가장 낮은 현실에서 온전하게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인간은 고뇌 속에서 탄식하지만 그것은 침묵이 탄식하는 것과 같다. 눈물의 강위를 지나서 인간은 침묵속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어김없이 봄이 온다. 오랜 침묵이 지나고 봄이 오는걸까... 자고 일어나면 노오란 개나리잎이 바스락거리며 일어나고 탐스러운 목련이 그 우아함을 한껏 뽐낸다. 새들의 노래가 청아하고 나비의 날개짓이 화려해 진다. 침묵속에서 생성되는 자연의 위대함은 영혼의 전율을 일으킨다. 모든것이 새롭게 탄생하거나 시작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듯 혼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다워 눈물난다. 이젠 그런 봄의 날개짓에 겨울을 실어 보낸다. 志我 True Love / May Se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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